1주일 판결 3건의 담합

사법농단 이후, 새로 취임하신 대법원장께서는 사법농단의 근본적인 원인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그리고 특히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통해 대법원장이 판사들을 통제한 것에 있다고 보아 결단을 내리셨다. 그 결단이란 법원행정처에서 판사가 수행하던 행정업무를 모두 판사가 아닌 공무원 또는 외부 인사가 수행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

위 제도 변화의 문제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부분은 종래 서울 초임지에서 법원행정처 요직을 거쳐 부장판사, 고법부장판사, 법원장, (운이 따라야 하겠지만) 종국적으로는 대법관으로 이어지는 법원 내 엘리트 코스가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유일한 승진이 없어지고(부장판사는 어지간하면 다 되니까), 좋은 평가를 받아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뒤 요직을 두루 거치는 경로도 사라져 버렸으므로, 많은 판사들이 열심히 할 동기를 잃어버렸다.

이에 더불어 법조일원화 시행 이후 5년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판사로 임관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어쨌든 변호사로 일을 하다가 온 사람들로서 상대적으로 높은 봉급을 포기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판사가 된 경우가 많으므로, 로펌에 있을 때처럼 자신을 혹사하며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여러 변화가 초래한 '당연한' 결과가 바로 각급 지방법원 배석판사들끼리 1주일에 판결을 3건만 쓰기로 하는 일종의 '담합'이다.판결문을 쓰는 게 판사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므로 1주일에 3건씩만 판결선고를 하기로 정한 것이다. 대략 1달에 12개의 판결을 선고하게 되는 셈인데, 당연히 1달에 법원 각 재판부에 접수되는 사건의 수는 24개(주심이 2명이므로)를 뛰어넘으니, 사건이 밀릴 수밖에.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도, 특히 2020년부터 사건 밀리는 현상이 심각해졌고 올해 초부터는 확실히 더 심해졌다.
통상 변론이 종결되면(그러니까 당사자들이 주장을 할 기회를 다 부여받았으면) 그로부터 4주~6주 안에 판결 선고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수행했던 사건 중에 울산 모 재판부는 변론종결 이후 4달 뒤를 판결선고일로 잡더니, 선고기일 3주 전에 갑자기 선고를 취소하고 강제조정결정을 내렸다. 당사자들이 모두 이를 거부하자 다시 판결선고기일을 잡았는데, 당사자들이 모두 거부한 날로부터 다시 4달 뒤였다. 결과적으로 변론종결되고 판결선고되기까지 9달 정도 걸린 것이다.

올해 초, 서울 중앙/동/남/북/서 중에 한 곳에서 진행된 사건에서 피고 소송대리인으로 답변서를 제출했다. 법리적으로는 조금 고민할 부분이 있으나 사실관계는 이미 확정되어 있어 심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사건이었다. 우리가 답변서를 내자 상대가 기일지정신청을 두 번이나 했는데, 거의 4달 이상이 지난 현재 아직도 기일이 잡히지 않았다. 순서대로 기일 잡을 테니 기다리라는 것일 텐데, 아예 기일조차 안 잡는 건 너무하지 않는가. 소장 내고 1년 뒤에야 첫 기일이 잡히는 경우도 다수 있다고 들었다.

이것이 사법농단의 재발을 막겠다며 시행한 제도 변화가 초래한 '당연한' 결과다.

당연히 판사를 제외한 나머지 법조인들이 법원을 성토하기 시작했지만, 여태까지 눈에 보이는 개선책은 나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판사가 1주일에 판결 선고할 건수를 정해놓는다는게 정말 웃기다고 생각한다. 뭐 워라벨, 내가 이 돈 받으면서 이렇게 내 몸 갈아넣으려고 굳이 로펌 때려치고 판사 된 줄 아냐, 이런 반박이 나오겠지만 판사 봉급을 로펌 변호사 월급이랑 같은 선에 놓는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아닌가. 9급 공무원이 한달에 180 받으니까 나도 1주일에 민원 3개만 처리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다만 열심히 하더라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구조가 된 상황에서 소명의식만으로 몸을 갈아넣어 판결문을 쓰라고 할 수는 없는 것도 당연하다. 사람은 그런 동물이 아니다. 


1주일 3건 판결선고 담합이 언제쯤 메이저 언론사에서 보도하려나 항상 궁금했는데, 얼마 전에 조선일보에서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면에도 기사로 실었고, 사설, 칼럼, 후속기사 등으로 여러 번 크게 보도했다.

그 결과, 법원에서도 판결 지연에 대하여 어떻게 해결책을 모색할지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기 시작했고, 예측되기로는 조선일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한 만큼 뭔가 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사법농단을 구조적으로 막겠다며 취한 조치가 일으킨 '당연한' 현상에 대하여도, 조선일보 등 메이저 언론사에서 보도한 뒤에야 구체적인 '조치'가 나오는 게 '당연'한 것인지에 대하여도 '어대'께서 숙고해 보셨는지 의문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항상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셨는지?

어쨌든 뭔가 실효성 있는 방안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by joshua-astray | 2022/08/15 22:01 | major - law | 트랙백 | 덧글(0)

좋은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10대 초반에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듣고 토이의 팬이 되었다. 2001년에 나왔던 토이 5집의 '좋은 사람'은 정말 지금 생각하면 가사가 찌질하지만, 그 때는 그런 감성에 취해 있을 때였다. 6년 뒤인 2007년이 되어서야 나온 토이 6집이 반가웠고, 다시 7년이 지난 2014년 겨울에 토이 7집이 나왔을 땐 너무나도 기뻤다. 변시 공부를 하면서도 토이 콘서트 예매하려고 노트북으로 광클을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변시를 보고 토이 7집 콘서트를 갔고, 콘서트를 시작하며 이적이 나와서 Reset을 부르던 순간과 성시경이 무대 밑에서 올라와서 세 사람을 부르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 내 관심사는 2014년으로부터 다시 8년이 지난 2022년인 올해는 과연 토이 8집이 나올 것인가, 였다.

아마도 토이 8집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몇몇 곡들은 약간 부당하게 공격을 받는 것 같기도 하지만, 표절에는 까막귀인지라 내 의견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멜로디가 다르다고 표절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단순히 박자와 전개가 유사한 정도인 것 같기도 하고, 허용되는 레퍼런스의 범위인지 표절인지를 판단할 능력은 없다. 다만 내가 들어도 happy birthday to you와 넌 어떠니가 거의 번안 수준이라는 것은 알 것 같다.

당사자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일부는 해명을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모로 실망이 크다.



중, 고등학생 때부터 노래를 참 많이 들었고, 그 동안 가장 내 감성에 제일 들어맞는 가수는 3명이었다. 토이, 성시경, 정준일. 그 외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가수로 스윗소로우가 있었고, 한때 페퍼톤스를 엄청 좋아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신촌 현대백화점 근처를 지나가며 우연히 들었던 성시경의 '거리에서', 집 앞 독서실에서 하루에 말 10마디도 하지 않고 혼자 공부하던 나날 배송받은 CD로 들은 페퍼톤스의 'Sing', 로스쿨 3년차 때 집 앞 카페에 커피를 사러 갔다가 들었던 정준일의 '고백', 그 노래를 처음 듣던 순간은 인생에서 잊히기 힘든 순간으로 남았다.

메이트가 활동을 중단한 직후에는, 정준일은 나름대로 라디오 게스트도 나가고, 마리텔 출연도 했었는데 사생활 논란이 터진 이후 히키코모리처럼 은둔하는 사람이 되었고 아무래도 예전만큼 많은 노래를 만들지도 않는다.

스윗소로우는 십몇년 동안 같이 활동하던 멤버가 이상하게 탈퇴하면서 그룹이 깨질 뻔했고, 몇 년 동안 활동을 못 했다. 페퍼톤스는 그 좋은 노래를 굳이 본인들이 목소리로 부르겠다면서 굳이 객원보컬을 안 써서 노래를 듣기가 싫어졌다. 누가 요새 진짜 가창력 많이 늘었다길래 최근 클립으로 4집의 '행운을 빌어요'를 들어봤는데 여전히 가수라고 할 수 없는 보컬이었다. 


엄청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승환은 정치적 편향성으로 두뇌를 지배당해 버려서 노래를 듣기 싫어졌고, 박효신은 다시 금전 문제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Nothing last forever. 모든 건 영원할 수 없지만 특히 좋은 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인지.

by joshua-astray | 2022/07/14 01:18 | minor - music/movie | 트랙백 | 덧글(0)

2018 v. 2022

4년 만에 이렇게 지방권력이 다 뒤집히는 걸 보다니, 무슨 조선시대 환국도 아니고.
2018년 지선 싹쓸이 이후 4년 동안 얼마나 민주당이 개판을 쳤는지 알 수 있다.

그 동안 있었던 일 중에 굵직한 생각나는 것들만 아래 정도인 것 같다.
- 조국 사태 + 조국에게 '마음의 빚'
- 애미추
- 집 팔 기회를 드립니다 + 김품아
-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 감사원장에게 지랄하기
- 울산시장 선거개입 + 황운하 공천
- 대북전단 금지법
- 대통령 국민 고소
- 박원순, 오거돈 성추행 + 피해호소인
- 당헌 바꿔서 재보궐선거 공천 + 선거 직전 가덕도 신공항 투척
- 수사권 조정 + 검수완박
- 한국쓰리엠과 이모

저 일들이 있기 전까지, 살면서 내가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계보를 잇는 정당을 찍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물론 가장 큰 것은 국조 선생이시다. 국조 선생이 없었다면 민주당이 저렇게까지 내로남불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국힘이 잘했다기보다는 민주당에게 철퇴를 내리는 게 목적이었지만, 어쨌든 국힘도 변하긴 했다. 빨갱이니 종북좌파니 하는 소리는 거의 없어졌으니까. 국힘이 그렇게 변하기까지는 탄핵과 대선 패배, 지방선거 참패, 총선 참패가 있었는데, 민주당도 정신을 차리려면 대선, 지방선거, 총선을 다 져야 하려나?

제발 김어준과 대깨들이 제공하는 판타지아에서 벗어나길.

* 서울시의회를 국힘이 장악하면서 오세훈이 본인 하고 싶은 걸 하게 될 텐데, 제발 지난 10년 간의 야인생활에서 변한 게 있길 바란다. 한강르네상스와 DDP, 세빛섬, 고척돔 같은 짓이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암담하고, 유람선 다녀야 한다고 양화대교 교량 때려 부쉈던 건 아직도 욕이 나온다.

by joshua-astray | 2022/06/02 00:10 | minor - politics | 트랙백 | 덧글(0)

영면하기를

irony

뉴스에 나온,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분이 내가 연락처를 받아 예전에 소개팅을 해 준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분이었다.

성적이 정말 좋았기 때문에 초임지도 좋은 곳을 받았다고 하는데, 초임지에 온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짐작이 잘 되지 않는다.

인생이란 모순투성이고 만사 새옹지마라지만 31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차라리 관운이 없었더라면, 그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동규형 시집 미시령인가 하는 것 좀 빌려줘,
너랑 마지막 나눈 말이 이 전화였구나.
나도 모르는 곳, 너와 내 말이 끝난 곳,
강원도 어디 바람 많은 곳인 모양이던데.

요즈음 네 무덤가에서 슴슴한 바람을 만나면
내가 몇 번을 잊어버리고 빌려주지 못한 미시령,
혹시 그곳에 네가 혼자 찾아간 것은 아닐까.
내년쯤 일시 귀국을 하면 꼭 찾아가봐야지,
네가 혹시 그 바람 속에 섞여살고 있을는지,

너를 알아보지 못하고 바람만 만나게 되면
흔들리는 그거라도 옷자락에 묻혀와야지,
그 바람 털어낼 때마다 네 말이 들리겠지,
내 시를 그렇게 좋아해준, 너는 그러겠지,
형, 나도 잘 알아듣게, 쉽고 좋은 시 많이 써,
이제 너는 죽고 나는 네 죽음을 시쓰고 있구나.
세상 사는 일이 도무지 어처구니없구나.
시를 쓴다는 일이 이렇게도 하염없구나.

- 마종기, 동생을 위한 조시 8. 혹시 미시령에 -

by joshua-astray | 2022/04/15 00:51 | 뒤를 생각한다 | 트랙백 | 덧글(0)

2019년 9월의 단상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으나, 2019년 9월의 어느 화요일 아니면 수요일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회사는 역삼역에 있었고, 야근을 하다가 9시쯤 역삼역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탔는데, 어떤 술 취한 복장도 허름한 할아버지가 부랴부랴 뒤늦게 뛰어와서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탔다. 딱 보아도 이미 술기운이 얼굴에 완연히 올라 있는 사람이었다.

그 버스의 노선은 역삼역에서 교대역을 지나 서초역에서 우회전해서 대검찰청과 대법원 사이 법원대로를 거쳐, 성모병원 앞을 지나 잠수교를 타고 녹사평 쪽으로 올라가는 경로였다. 이상하게 서초역이 다가올수록 차가 꽉꽉 막혀서 왜 이러나 했는데, 서초역에서 우회전해서 대법원대로로 접어드는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법원대로 3개 차선 정도를 막아놓고 정경심과 조국에 대한 검찰수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평일 9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 시간에 시위라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술 취한 할아버지가 버스 창문을 열더니 "야 이 빨갱이 새끼들 뭐 하는 거야 그럴거면 북한으로 가!"이러면서 마구 욕설을 섞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시위 현장 통제중이던 경찰이 오더니 그 사람에게 창문 닫으라고 했는데(물리적 충돌이 생기면 큰일나니까), 그 할배는 창문을 닫는 척 하더니 다시 열고 똑같이 빨갱이 새끼들 어쩌꾸 하는 욕을 했다. 경찰은 (그 할배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버스기사에게 얼른 출발하라는 신호를 했고, 마침 신호가 바뀌고 앞 차들이 좀 빠지면서 버스가 시위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 직후에 버스기사가 그 할아버지한테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이러면서 화를 냈는데(버스기사 입장에서는 화 내는 게 당연), 그 할배는 약간 움찔하면서 "아니 기사님 저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북한 사람들이잖아요"라고 쭈구렁거리면서 대답하더니 자리에 앉아서 얌전해졌고, 다행히도 그 이후에 별 일은 일어나지 않고 버스는 노선대로 잘 왔다.

알고 보니 그게 이른바 '조국 수호 집회'로 불리는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의 시작이었고, 그 이후에는 평일 저녁에 시위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매주 주말마다 시위대가 대검 앞에서 시위를 하는 통에 주말에 회사에 갈 일이 있으면 반포대교나 잠수교가 아닌 한남대교를 통해야만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국 그 사람들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시위하던 사람들과 빨갱이라고 소리치던 할배들이 모두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기여하였으니,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의 생생한 현장.

by joshua-astray | 2022/03/13 18:01 | minor - politic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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