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원에 대한 회고: 경쟁에 대하여


2012년 2월 27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해서 2015년 2월 25일, 3년 만에 졸업했다. 휴학이나 유급이나 이런 일 없이 쉬지 않고 3년 동안 무사히. 변호사시험은 1월 초에 넘겼고 발표는 4월, 결과가 좋게 나온다면 5월 내지 6월에 (드디어) 군대를 가게 되겠지.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지긋지긋했던 3년에 대하여 깊게 고찰해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 글을 한 번 써 본다.
정말이지 겪을 땐 그렇게 길 수 없었던, 그래서 지나고 나서도 금방 갔다고 할 수 없었던 3년이었다.



무엇보다, 법전원 3년을 겪으며 가장 절실히 체험한 것은, 정말이지 지독한 경쟁이 얼마나 사람을 진화시키는가, 였다.


법전원 내에서는, 정말이지 극한경쟁이 성립한다. 법전원 제도, 구조의 특성상 로스쿨 내에서의 경쟁은 극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경쟁을 3년을 겪고 나니 이러한 생활은 때려죽여도 다시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경쟁에 질려버렸다. 물론 경쟁 속에서 공부를 죽어라 할 수밖에 없었고 실력도 예전보다 훨씬 늘었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꼭 그렇게까지 학생들을 극한으로 내몰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법전원의 커리큘럼은 세부사항은 각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주된 흐름은 공통된다. 대부분의 학교는 1학년 때 법학 필수과목(헌법, 민법, 형법 및 소송법)에 대한 이수를 완료하는 과정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한다. 그리고 2학년 때에는 필수과목은 아니지만 변호사시험 과목으로 포함되는 기타 교과목(상법, 행정법 등)을 이수한다. 그리고 3학년 때는 주로 실제 기록과목과 연습과목 등을 들으며 변호사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과거 체제(학부 4년 + 연수원 2년)에 비하면 좀 지나치게 많은 양을 단기간에 쑤셔넣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커리큘럼 자체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잘 짜여져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목을 이수하면서 받게 되는 '학점'이 어떻게 부여되는지와, 법전원 학점의 중요성이다.


전국 모든 로스쿨에서의 기본적인 학사관리는 동일하다. 연수원에서와 마찬가지의 '엄격한 상대평가', 교수의 재량을 완벽하게 배제한 학점 비율. 간단하게 말하면 어느 법전원이든 10명 이상 학생이 듣는 수업에서 몇 명의 학생이 어떤 학점을 가져갈지는 정확하게 정해져 있다. 전체 수강인원에서 A는 25%, B는 50%, C는 15%, D는 10%. 그리고 A, B, C 안에서의 +, 0, -의 비율은 정확하게 1/3씩. 이 비율은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비율이다. 단 한 명의 예외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학생은 좀 잘했으니 +를 주고 싶다면, 다른 학생의 +를 뺏어야만 한다. 교수가 재량으로 한 명이라도 더 +를 붙여줄 수 없다. 즉, 학부 때처럼 교수가 적당히 A와 B로 몰아주거나 이럴 수 없다. 플러스도 마음대로 붙여줄 수 없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100명이 수업을 듣는다고 하면 A+ 8명, A0 9명, A- 8명, B+ 16명, B0 17명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인원비율을 지켜서만 교수는 학점을 주어야만 한다.그나마 예외가 성립하는 건 10명 미만의 소규모 수업일 때인데, 그 때에는 D가 없어지고 A, B, C를 1/3씩 줄 수 있고, 교수 재량으로 플러스, 제로, 마이너스를 줄 수 있다. 그 외에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



학부 때라면 이런 시스템이라도 경쟁이 좀 덜할 지 모르겠다. 전날 술 마시고 시험 보러 오거나, 밤새 놀다가 와서 금메달 따고 가거나, 이런 애들이 있으니까. 그러나 여기는 법전원, 기본적으로 학부 시절 학점관리 죽어라 한 애들이 모인 곳이라 그런 애들이 없다. 그러니까, 공부를 안 하는 애들이 없으니까, 밑에 깔아주는 애들이 없으니까,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자칫 삐끗하면 C로 떨어지는 건 얼마든지 현실적으로 발생가능한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법전원에서의 학점관리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경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연수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하지만, 특히 법전원은 학교에서의 성적이 그대로 취업으로 직결된다. 특히 대형로펌에의 취직을 위해서는 더더욱. 

전통적으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의 진로는 판사/검사/변호사로 나뉘지만, 로스쿨에서는 좀 다르다.
법조일원화로 인해 로스쿨 졸업 후 바로 법관(판사)임용은 불가능해졌으므로 논외. 검사의 경우에는 로스쿨 졸업 후 바로 임용이 가능하지만 전체 학점보다는 검찰실무 과목과 여름/겨울의 검찰 실무수습에서의 결과가 더 중요하므로 이 역시 다른 요소의 중요성이 크다. 그리고 정원 자체가 적으므로 법전원 졸업하는 인원의 80%는 변호사로서 취업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로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삼성전자 사내변호사? 천만에. 대형 법무법인이다. 김장, 태평양, 광장, 세종, 율촌, 화우, 바른. 이른바 7대 로펌. 초봉이 억에 근접한 고소득자.


그리고 김&장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7대 로펌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방학 기간 해당 로펌에 실무수습을 나가야 한다. 그 실무수습을 나가려면 인턴채용이 되어야 한다. 인턴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점. 대부분의 대형로펌에서 인재채용은 2학년 1학기에 시작되므로, 1학년 학점이 좋다면 원하는 로펌으로 실무수습을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그리고 실무수습을 나가서 정말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2학년 때의 학점도 좋으면, 그 때 채용의 기회가 열린다. (물론 연줄이 있다면 학점 따윈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연줄이 없으므로.)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로스쿨 졸업하고 대형 로펌에 취직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학점이다. 그 평점이 높아야, 원하는 로펌에 문이라도 두드려 볼 기회를 갖는다. 실무수습을 못 나가면 그 펌에 채용될 가능성은 매우 없으니까.


물론 생각 없이 그냥 변호사 자격만 따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다니는 애들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애들은 안다. 금전적인 수입을 많이 얻으려면 초장부터, 첫 1년부터 성적을 제대로 받아놓아야 한다는 걸. 그러니까 다들 열심히 한다. 처음에는 그냥 열심히 하는데, 나중에는 서로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이걸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자극을 받아서, 내가 아무리 잘 쓰더라도 남들이랑 비슷하게 쓰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진짜 죽어라고 열심히 한다. 그런데 엄격한 상대평가로 학사관리를 해서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자리는 정말로 한정되어 있으니까,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 경쟁이 3년 내내 이어진다. 어떨 것 같은가?


이 엄격한 상대평가가 도입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로스쿨 1기는 3년 내내, 2기는 2학년 끝날 때까지. 학부와 똑같은 학점 체계 하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러니까 전체 인원의 70% 이상은 B+이상을 줄 수 있고, 교수의 재량에 따라 +0-를 마음대로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 그런데 그런 학사관리로는 '실력 없는' 로스쿨 변호사들이 양성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전국 모든 로스쿨에서 학사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로스쿨 3기부터.


물론 연수원도 이거랑 시스템은 비슷하다. 그리고 연수원은 시험을 보는 시간 자체가 길고 힘들다. 정말로, 문자 그대로, 어떤 과목은 하루종일(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과목 시험만을 보니까. 그리고 그런 시험을 4~5개 연달아서 보니까. 예전에, 2000년대 초반이었던가, 사법연수원에서 시험을 보던 연수원생이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이유는 과로사. 9시부터 5시까지 시험을 보는데, 그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자료를 보아야 하는데, 당시에는 그런 시험을 매일매일 연달아서 봤다. 사람의 육체보다 정신이 위대하다지만 그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시험보고 밤새가며 공부하고 다시 시험보러 온 연수원생이 시험장에서 과로사로 사망하니까, 연수원 시험 보는 체계가 조금 바뀌었다. 예전에는 매일매일 시험 보던 일정을, 하루 시험 보고 하루 쉬는 걸로 바꾸었다.


법전원에서 시험 보다 쓰러져 사망한 사람이 있냐고? 정말 다행히도 그런 학생은 없었다. 시험 자체가 학교는 3시간 시험 보면 정말 길게 보는 건데, 연수원은 3시간이 기본 시험시간이라고 들었다. 여기도 각 과목당 시험 3시간씩 보게 하면 아마 시험 보다 쓰려져 응급실로 실려가는 사람 나올 거다. 그리고 연수원에 비해 로스쿨이 더 불리한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일단 경쟁에 시달리는 기간 자체가 3년으로 좀 더 길고, 로스쿨은 마지막 1년 동안 변호사시험 준비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 힘들며. 마지막으로 전체 법전원생은 연수원생보다 많지만 각 법전원 학생은 많아봤자 100명 정도로 연수원생보다 훨씬 적다는 데에 있다. 1000명 중에서 15% 안에 들어 A를 받는 것과, 로스쿨 120명 학생 중 1분반 40명 내에서 15%, 6등 안에 들어 A를 받는 것은 그 체감느낌이 확 다르다. 더군다나 연수원은 하위권을 공유(?)하지만 법전원은 그런 거 없다. 서울대 로스쿨 70등(정원 150명)과 동아대 로스쿨 20등(정원 40명)이 같이 경쟁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누구에게 더 유리할까? 연수원이라면 같은 울타리 안에서 경쟁해서 학점을 받겠지만 여기서는 울타리가 다르다. 그러니까 이런 점은 법전원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 경쟁 속에서 3년을 버티다 보면, 대충 나온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어떻게 로스쿨은 들어왔을지 몰라도 변호사 자격을 갖기에는 수준이 모자라는지. 정말 신기하게도 어느 집단에서도 하위권의 모습은 비슷해서, 정말 저런 돌대가리가 있나 싶을 정도로 멍청한 애들도 있긴 있다. 나중에 변호사가 된다면 의뢰인에게 멱살 잡힐 것만 같은 애들.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애들은 정말로 초보 변호사로의 첫발을 내딜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중요한데, 정말로 그런 경쟁에서 이른바 '훌리건'짓을 하는 애들, (매우 나쁜 의미로) 약삭빠르고 계산적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걸 다 아는데 본인은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안 들키고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애들이 떠오르게 된다. 어느 인간관계에도 그런 사람은 있지만 경쟁이 심화되니 사람들이 다들 자신의 진짜 성품,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자신의 본래 마음을 드러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던, 가까운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하고, 그렇게 약은 짓만 골라 하는 것 같은 애들이 잘 나가는 거에 자격지심도 느껴보고(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3년을 보낸다. 적어도 같은 기수 120여명 애들중 60~70명 이상의 사람들의 인격의 밑바닥을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딜 가도 통하는 격언은 '유유상종'이더라. 어쩌면 그렇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몰려 있는지. 정말이지 신기하고도 이상한 현상이었다.



어쨌든, 그 경쟁 3년을 겪고 나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학부 때와는 다른 수준의 실력을 갖추기는 했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것들을 놓아야 했다. 원래 계획은 공부를 하며 용돈벌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림없는 소리였다. 로스쿨 1기, 2기 때는 모르겠지만 경쟁이 이 정도로 심한데 공부하면서 다른 일을 절대 같이 할 수 없다. 교양서적을 마음 편히 읽어본 적이 별로 없고, 방학 때 1주일 안 되게 잠깐 여행이나 가는 것 말고는 딱히 놀러갈 수도 없었고, 학교에 있어도 인간관계로 힘들었다. 마지막 1년은 정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한 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해 실망했다. 3년 동안 고작 120여명의 사람들하고만 지내며 그들과 인간관계를 쌓았는데, 그 사람들끼리만 경쟁을 시키니까, 너무도 얄팍한 인간관계가 되더라. 그 와중에서도 정말로 진심으로 상대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나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때, 그 때 느끼는 실망감은 너무도 쓰렸다. 그런 일들을 몇 번 겪으니 (적어도 같은 집단 내에서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 들은 농담으로는, 의사들은 절대 같은 의사들과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뭐 어느 동종업계든 다들 비슷하겠지만, 같은 의사 집단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나. 이제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대충 알 것 같다고 해야 하나. 3년 동안 모두가 가면놀이를 하는 느낌이었다. 진심을 숨겨둔 채 표정을 유지하고, 서로가 서로의 속마음을 탐색하는.





덧) 작년 가을즈음이었나, 원래 열람실로 사용하던 건물에서 로스쿨 면접을 진행한다고 건물 출입을 통제해버려서, 잠시 학부생들도 많은 건물에서 며칠 공부할 때가 있었다. 그 때가 법전원 면접 기간이었으니, 면접 보러 온 애들이 정장 입고 돌아다니는 걸 보았다. 면접 끝난 애들이 지들끼리 웃고 떠들며 "고생했어~~ 힘들었지?" 이러고 있더라. 같이 있던 동기들이 모두 비웃었다. 너무 같잖아서. 나는 거기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쟤네한테 말해줘야 된다고.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 얼른 도망치라고. 몇몇은 빵 터졌다. 나는 진심이었다. 입학한 120명이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중 30명도 안 되는 사람만이 좋은 자리를 잡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자리를 확보해도 변호사시험에 떨어지면 모두 도루묵이 된다.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氣勢)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途中)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途中)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形勢)를 이르는 말. 출처는 네이버 사전. 법전원 3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라 생각한다.





* 이런 글도 밸리로 보내지 않는다.

by Joshua-Astray | 2015/03/11 05:36 | 뒤를 생각한다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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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5/03/1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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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5/03/1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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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123 at 2015/05/10 20:29
그래도 변호사되면 세후형님 일천아닙니까? 한해 2천명 나오니마니 해도 변호사돈마니 벌더라구요~
Commented at 2015/05/11 05: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5/05/1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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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5/12/02 00:0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7/04/15 01:11
동아대 80명 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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