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 3


군법무관 2년차에서 3년차로 넘어가는 시기, 이제 리크루팅의 해다.

전통적으로(그러니까 사법연수원 체제에서) 군법무관들은 임관 후 2년을 전후로 채용 절차가 진행되었다. 연수원 체제 하에서 군법은 '성적이 좋은 미필'이 가는 특별한 경력 같은 느낌이었던지라(어리고 똑똑한 남자가 군대 가기 전에 사시가 되고 연수원도 좋은 성적으로 수료해야 군법 임관이 가능하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어린 남자 군법무관을 선호했던 게 사실이라(판/검/변 어디든 인기가 좋았다) 이들은 가고 싶은 곳을 매우 손쉽게 갈 수 있었다. 군법 TO를 따로 빼서 판/검사 임관을 했던지라 여성이나 기필 남성에 비해 경쟁이 약하다는 말도 있었고, 펌에 가면 보통 김/광/태 중 하나를 갔다. 특히 설법 출신 어린 군법은 거의 다 김앤장에서 알아서 모셔가려고 했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공법은 공부 안 했다는 인상이 강해 좋은 곳 취직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특히 법원은 재작년 이전까지는 공법 출신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물론 이건 다 연수원 군법 출신들의 이야기다. 로스쿨 군법은 딱히 성적이 좋다는 이미지가 없고 로스쿨 자체가 획일적으로 줄을 세울 수 있는 기준이 없으니까(변호사시험이 사실 있긴 한데 그건 성적도 최근에야 공개하는 걸로 바뀌었고 등수 공개는 하지 않는다), 로스쿨 출신 군법은 알아서 자기 앞 길을 찾아야 한다. 대형 로펌 가고 싶으면 여기저기 원서 넣고 자기소개서 보내고, 면접 보고 식사를 가장한 면접을 또 보고, 검찰은 시험 서너번 보고 면접 보고 이런 식.

작년은 사법연수원 43기와 로스쿨 3기 군법무관들의 채용이 진행된 해였다. 문제는 법원이었다. 작년까지는 경력법관 채용이 가능한 대상이 법조경력 3년 이상인 사람들이었고(올해부턴 5년이다), 법무관 3년을 경력으로 인정해주므로, 43기는 군법무관의 경우 법조일원화와 상관없이 즉시 판사 임관이 가능한 마지막 기수였다. 사람들이 다 그걸 알고 연수원에 가는 바람에 어느 해보다 군미필 합격자가 대거 몰렸고, 덕분에 군법무관 컷이 수직상승해 예년보다 그 기준이 100등 이상 올라갔다. 덕분에 예년 같으면 충분히 군법무관을 가고 충분히 법원에 갈 수 있는 성적을 가진 사람도 공법으로 밀렸고, 그 사람들이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군법무관을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법원에 지원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법원에서는 우리가 이런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말고 지원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61 : 3.

연수원 43기 군법/공법 출신 법관 합격자와, 로스쿨 3기 출신 군법/공법 출신 합격자의 비율.

저 결과를 보고 개인적으로 좀 많이 좌절했다. 좀 심하지 않은가, 물론 연수원 43기 법무관들이 평균적으로 능력이 높은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지원자 비율은 엇비슷한데, 심지어 로스쿨 3기 출신 군법은 판사시험에서 전멸하고 공법 3명만 살아남았다. 그러니까 군법들만 기준으로 하면 거의 30:0의 완패가 된다. (참고로 연수원 출신과 로스쿨 출신을 비교하면 대략 100:25 정도) 개인적으로 이번에 판사 시험을 본 3기 군법무관들을 알고 있는데, 성적이 꽤 좋은 사람도 있었다. 1명도 뽑지 않은 게 아마도 공정하게 채용시험을 거쳐 줄세우기를 한 결과라고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그런 것 같지 않고, 덕분에 요새 고민이 늘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마도 올해 법무관을 대상으로 2년짜리 로클럭을 뽑을 거다. 그러면 법무관 3년 + 로클럭 2년으로 5년 경력을 채울 수 있고 그러면 법관 임용이 가능해지니까. 그렇게 모집을 하는 이유가 딱히 로스쿨 4기 때문은 아니고, 연수원 44기 군법무관들을 법원에서는 잡아 둬야 하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연수원 44기만 지원하도록 하면 많이 이상하니까 로스쿨 4기 군법무관들에게도 문은 열어 놓을 텐데, 그리고 적게라도 합격자를 뽑긴 할 텐데 그 비율이 얼마나 될까. 그게 계속 걱정이다. 어차피 시험도 보는데 그 성적대로 뽑는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연수원과 로스쿨은 엄밀하게 말하면 채용과정이 다르다. 연수원 출신은 바로 임용하지만 로스쿨 출신은 시험 합격 후 8개월 동안 교육을 시킨 후에 임용을 하는지라(쉽게 말하면 한 기수 밀린다), 어차피 따로 8개월 교육을 시킨 후에 써먹을 생각이면 같은 기준으로 줄을 세우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같은 시험을 봐서 똑같이 줄세우기를 할 거면 똑같은 시기에 임용하는 게 맞고. 결론은 외부적으로는 공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같은 시험을 보지만, 내부적으로 연수원과 로스쿨 TO를 나눠 놓고 시험을 본 후에 그 안에서 각각 줄세우기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작년에는 그 비율이 극단적으로 로스쿨이 적었기 때문에 61 : 3, 아니 30 : 0의 비율이 나온 거고. 올해도 똑같이 그 비율대로 사람을 뽑으면 로스쿨 출신은 그냥 시험 들러리 아닌가. 그런 걸 하겠다고 내가 열심히 책 보고 기록 보면서 시험 준비를 해야 하나… 정말 같은 시험으로 획일적으로 줄세우기를 할 거면 그 이후에 같은 채용과정을 보장하거나, 출신에 따라 차등을 두어 교육하면서 비율은 작게 두면 어쩌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로스쿨에 진학한 것 자체를 후회하진 않지만, 가끔씩은 아예 좀 더 일찍 로스쿨에 오거나 아니면 그냥 인생을 건 도박으로 사시를 계속 봤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이도 저도 아닌 기수에 끼어 있는게 나인가 싶어서, 요새는 고민이 많다.

by joshua-astray | 2017/02/21 22:19 | 앞을 바라보지만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memory203.egloos.com/tb/441325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긁적 at 2017/02/21 23:38
법원에서는 우리가 이런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말고 지원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

개인적으로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메세지인데 말입니다. 결과는 역시나....


여튼 고민이 많으시군요.... 뭐 그래도 주면에 로스쿨 나온 사람들은 인문 출신이건 이공계 출신이건 밥 굶지는 않더라구요. 잘 되실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화이팅입니다. ^^
Commented by joshua-astray at 2017/02/22 23:54
43기 공익법무관들을 향한 나름대로의 분명한 시그널이었습니다. 우리는 너희를 뽑을 생각이 충분히 있으니 쫄지 말고 지원해라 정도?

밥 굶지 않게 되려면 올해는 열심히 노력해야겠죠. 감사합니다. ㅎㅎ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