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ewell to military

한참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전역이지만, 전역 후 어디에서 지내게 될 지 불확실했던 터라 이사 준비를 좀 차일피일 미뤘었고, 결국에는 7월 말에 대충 당장 필요한 것만 조금 챙겨서 급히 얻은 단기월세 방으로 나왔었다. 이번 달 안으로는 관사를 빼야 했던 터라 어젯밤에 춘천에 가서 한숨 자고 오늘 짐을 다 들고 서울로 왔다. 이제 정말 'farewell to army, goodbye 춘천'인 셈이다.


고작 몇 주 지나지 않았는데 꽤 오랜만에 춘천에 가서 잠을 청하니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잠을 좀 설쳤다. 아침에 짐을 다 싸고 나오는데, 이제 춘천에서 생활할 일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앞으로 사람들이랑 같이 춘천 놀러와서 아는 척 하면서 여기저기 끌고다니는 거 아니면 여기 올 일 없겠구나, 뭐 이런 생각도 들고. 전역한 지 대충 1달이 지났으니 이쯤 되면 지난 군생활 3년을 좀 돌아보고 남겨도 괜찮겠다 싶었다.


친구가 말하길 군법무관 3년 동안 다들 3가지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운동, 영어, 결혼. 그리고 거의 대부분 2가지만 하고 전역한다고. 나도 그런 셈이다. 그리고 군생활 3년 동안 잘한 일 Top 3 중에 하나가 수영을 배운 거였다. 결과적으로는, 골프를 거의 배우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뭐 소소하게 몇 가지 얻은 게 있는데 하나는 아직도 무리하게 활동하면 살짝 아픈 왼쪽 무릎과 오른쪽 발밑, 초보 단계를 벗어난 운전 같은 것들.

무엇보다 군생활 3년 동안 크게 깨달은 건 어딜 가도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것과, 처음 대하는 사람에 대한 경계를 절대 게을리하지 말라는 것. 편 가르기 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게 한다. 그리고, 경력법관제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 성적만으로 판사를 하는 게 아니더라. 절대 판사를 하면 안 될 사람이 임용되는 걸 보고 느꼈다. (학부 때는 '지들은 바로 임관해놓고 우리보고는 10년 경력을 쌓으라고? 이것도 사다리 걷어차기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철없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군사법원이랑 군검찰은 다 폐지해야 된다. 지금 제도상으로는 군사법제도의 독립성은 거의 보장되지 않는데다가(송영무 장관의 개혁안으로 진행되면 조금은 나아지긴 하지만) 무엇보다 이 조직은 그런 큰 권한,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할 정도로 역량 있는 조직이 아니다. 중학교 3학년 여자애의 벗은 가슴을 찍은 사진이 '사회통념상 음란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를 때린다거나, 국가배상에서 유리하게 써먹으려고 검찰관 처분에 압력을 넣는다거나 하는 일들은 아마 평생 기억할 거다. 그냥 민간 경찰이 수사해서 민간 검찰한테 넘기면 검사가 판단해서 민간 법원에서 판결 내리는 게 맞다.


다시 군법무관 생활을 하라고 하면 공군이 보장되어도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다시 군법이랑 공법 중에 고르라고 하면 군법을 거의 100% 고를 것 같다. 공법을 갈걸, 이라고 후회한 적이 한두번 있기는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확실히 군법이 더 나았다. 별로 즐겁진 않았지만 30대 초반에 부서장을 해보는 것도 큰 경험이었고(시야가 넓어지더라),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강원도 전방에서 군생활하는 것도 지나니까 추억이 되었다. 아마도 평생 다시 하지 않을 검찰 일을 해보며 이런저런 경험을 쌓은 건 (비록 검찰에 가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여러 모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군판사를 해보지 못한 건 아직도 아쉽다.

여러 모로 좋은 군법무관 생활이었지만, 벗어난 것이 훨씬 더 좋다.

by joshua-astray | 2018/08/26 23:27 | 뒤를 생각한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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