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si window dresser


정말 오랜만에 정치 글을 쓴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나는 '디자인서울'로 대표되는 오세훈의 전시행정에 질려 있었다. 새빛(둥둥)섬, 영등포 고가도로 철거, 동대문운동장 철거 후 역사공원+DDP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화룡점정이었던 것은 경인운하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이 지나가기에 좁다는 이유로 멀쩡한 교량을 때려부수고 교각 사이를 넓히고 아치를 다는 공사를 하다, 지방선거로 서울시 의회가 여소야대가 되면서 예산을 못 받아서 'ㄷ'자로 거의 1년 넘게 방치된 양화대교였다.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를 건널 때마다 급격한 'ㄷ'자 커브를 겪어서 무슨 보수공사를 이렇게 오래 하나 했었는데 실상은 '한강르네상스' 유람선 통과를 위한 공사였고, 그걸 위해 쓴 예산이 얼마였더라. 그런 그가, 무상급식이 예산을 낭비하는 포퓰리즘이라며 자신의 시장직을 걸고 승산이 없던 주민투표를 하고, 결과가 나오자 실제로 시장직을 던져 버리는 모습에 정말이지 질려 버렸다.


아마 당시 서울시민들 중 다수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당시 안철수의 후보 양보가 있긴 했어도 별 지명도도 없고, 공격당할 약점도 은근히 있었으며, 심지어 미남과는 거리가 먼 박원순이, TV토론회에서 나경원에게 그야말로 탈탈 털렸음에도 여유 있게 당선된 데에는 전시행정에 질린 시민들이 시민단체 출신 참신한 행정가를 원했던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당시 박원순은. 'ㄷ' 모양으로 방치된 양화대교를 그대로 임시교량과 이어붙인 상태 그대로 두어서 전시행정에 대한 경계를 환기함과 동시에 관광자원으로 써야 한다고 했었다. 멀쩡한 교각을 때려부순 전시행정의 결과가 이렇다는 것을 10년, 20년 동안 두고두고 남겨야 한다며. 그 말의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장을 철회하고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공사를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나는 그 말에 (좋은 의미로)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벌써 8년 가량이 지났다. 재선 2번을 거쳐 최초의 민선 3선 서울시장이 된 그가 지난 서울시장 임기 동안 한 일은 대략 다음과 같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서울시립대 재정 쥐어짜기, 월드컵대교 예산 깎아서 티스푼 예산 만들기, 대책 없는 서울역 고가 공원화, 고척 스카이돔 공사 강행해서 넥센 강제로 밀어넣기, 또 뭐가 있는지 나무위키 찾아보면 나오지만 대충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이 정도다. 서울시립대는 반값 등록금 실현한다고 학생들이 잘 이용하던 셔틀버스 없애고 학식 예산 줄이고. 월드컵대교 예산 깎아서 교각 3개만 덩그러니 물 속에 잠겨서 감가상각 진행시키고, 그 예산 깎아서 한 짓이 고척 스카이돔 공사 강행하고 돈 때려 박아서 괴이한 돔구장 만든 다음에 서울시장 권한으로 협박해서 반 강제로 넥센을 고척돔에 밀어넣었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는, 그 취지 자체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당시 고가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건 분명하지만, 하루 교통량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고가 폐쇄하고 공원으로 만들면 차는 어떻게 다니라고? 주말에 공덕에서 서울역 넘어 명동이나 남대문 가는 버스를 타면 욕이 절로 나온다. 고가공원을 할 거였으면 우회통행로를 확실하게 확보하거나(신규 고가건설, 아니면 진짜 돈 엄청 때려박아서 다 지하보도로 바꾸든지, 서울역 지하를 지나가려면 희대의 난공사가 되었겠지만), 그게 아니면 뭔가 대책이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대선후보 경선 전에 저걸 보여주고 싶었으니 우회로고 뭐고 서두를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한다는 짓이 일요일 새벽 6시엔가 나와서 역시 안 막히네, 괜찮다 이러고 있는 짓이었고. 


박원순이 오세훈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오세훈의 업적이 뭐가 있는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으니까. DDP나 새빛섬, 고척스카이돔은 지어놓은 걸 어떻게든 활용하고 있는 거고, 일부 보수층이 포장하는 것처럼 전시행정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쟤네 지을 돈이었으면 훨씬 많은 사업을 다양하게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서울시장 MB랑 비교하면 박원순이 과연 더 낫다고 할 수가 있을까? 임기가 4년 v. 10년인 걸 고려하면 더더욱? 요새 박원순이 시도하는 전시행정류는 원래 MB가 甲인데?


갑자기 박원순 글을 쓰는 이유는, 짜증이 나서다. 왜 짜증이 나냐, 이 양반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운이 정말 좋다. 일단 오세훈이 자진사퇴하고 열리는 보궐선거에 그냥 나왔으면 군소 후보 1로 묻히고 말았을 텐데, 박경철이 짜 준 안철수의 몸값 올리기 전략으로 서울시장에 정말 비교적 쉽게 당선됐다. 그리고 서울시장 재선 노릴 때쯤 안철수가 새정치를 하겠다며 당을 만들고, 그러면서 서울시장도 무조건 후보 내겠다, 단일화는 없다고 하다가 김한길이 뭘 어떻게 설득했는지 갑자기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쳐졌고 후보단일화니 뭐니 할  없이 자연스레 진보 측 단일후보로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3선할 때는 503 탄핵으로 맛이 간 자유한국당이 김문수를 후보로 들고 나왔고, 이미 '새정치'의 이미지를 다 잃은 안철수가 중도보수 후보로 나와서 심지어 보수 표 분산까지 된 덕에 정말 압도적으로 3선에도 성공했다.


더 대단한 건 가만히 있는데 대선 예비 경쟁주자들이 다 엎어진다는 거다. 안희정은 지난번에, 이재명은 어제 확실히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갔다. 안희정은 정말 의외였고, 이재명은 사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민주당에 이제 유력 차기주자라고 할 만 사람이 누가 있나? 당장 떠오르는 인물 중에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 인물은 김부겸 정도밖에 없다. 김경수는 아직 너무 어리고, 솔직히 오거돈은 내가 잘 모른다. 물론 지금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안희정 이재명 다 고꾸라져도 옛날 노무현처럼 갑자기 부상하는 인물이 없으리란 법도 없고, 민주당 후보로 박원순이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꽤 높을 거다. 그렇게 되면 다행이고.


대통령 박원순은 정말 보기 싫다. 보수층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박원순이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서 싫은 게 아니고, 그의 정책과 행정 능력은 대통령에 적합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정말 싫은 건 그가 자신의 초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정책을 내놓는데, 그게 먹혀서 3선도 하고 대선후보도 노려볼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여당 원내대표가 민노총은 말이 안 통한다고 노동계랑 각을 세우는데 한국노총 집회에 가서 노조 하기 편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 대권 욕심이 없으면 설명이 안 되는 행보다. 이미 그의 눈은 대선을 향해 있다.


탄핵 여파가 아니었으면 그가 이렇게 무난히 3선을 했을까? 그가 만약 서울시장 MB와 붙었다면 서울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 그는 비교적 쉬운 여건에서 쉬운 상대를 만났고, 그 덕분에 자신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다. 아무리 박원순에게 실망했어도, 분명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다고 하다가 갑자기 1주일만에 모든 게 잘못됐다며 박근혜만큼 청렴한 대통령이 어디 있냐고 태극기를 흔든 김문수를 찍을 사람은 많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초심을 잃어버린 사람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유사 전시행정가', 지금의 박원순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by joshua-astray | 2018/11/20 01:56 | minor - politic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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